사건의 시작
문을 닫은 지 오래된 헌책방이 오늘만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에 신작을 낸 시인 왕낭송을 초대해 조용한 낭독 모임을 여는 날이었다. 책방 주인 배고서는 이 행사에 서점의 사활을 걸고 있었다. 최근 서점을 지키려 여기저기서 급전을 끌어다 썼고, 그중에는 왕낭송에게 개인적으로 빌린 돈도 있었다. 손님을 대할 때는 늘 웃는 얼굴이었지만, 오늘 행사가 잘 풀려야 다음 달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계산대 옆에는 오늘의 소개판이 큼지막하게 걸렸다. '대필 작가 류필우와의 대담.' 왕낭송의 화제작 상당 부분을 대신 써 주고도 표지에는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 류필우가, 오늘은 단상에서 질의응답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담담한 말투 속에 옅은 자조를 감춘 채였다. 신간 담당 편집자이자 오늘 행사 기획자인 성교정은 서류철을 옆구리에 낀 채 분주히 오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아직 맞춰야 할 정산 숫자가 남아 있었고, 최근 들어 자꾸만 어긋나는 그 숫자가 신경 쓰였다.
서가 한쪽에는 절판시인 진절판이 일찍부터 와 있었다. 왕낭송의 혹평 한 줄로 책이 절판된 뒤 오랫동안 붓을 놓았던 그녀였다. 도서관 사서 소열람도 손님들 틈에 섞여 있었다. 왕낭송과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그의 초기작에 얽힌 오래된 사정을 누구보다 오래 알고 있었지만, 우정 때문에, 혹은 이제 와 밝혀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입을 다물어 왔다. 재고실에서는 아르바이트생 편정가가 밀린 가격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가 쪽 책들에 새 가격을 매기는 일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고,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행사 시작을 앞두고 서가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진절판이 왕낭송과 마주치자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고, 손에 잡히는 대로 서가 진열용 책꽂이 받침을 집어 들기까지 했다. 옆에 있던 손님들이 급히 팔을 붙잡았고, 그녀는 곧 받침을 내려놓았다. 소란은 짧게 끝났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화가 치밀었다는 사실을 그녀 스스로도 숨기지 않았다.
낭독회가 시작되자 왕낭송은 단상에 올라 신작을 읽어 내려갔다. 류필우가 그 옆에서 질의응답을 이어받았고, 관객이 던지는 질문에 자신만 아는 문장으로 슬쩍 답하며 시간을 채웠다. 사무실에서는 성교정이 정산 서류를 붙들고 있었다. 숫자가 자꾸 어긋나 좀처럼 손을 뗄 수 없었고,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반드시 맞춰 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왕낭송은 잠시 쉬려고 재고실로 들어갔다. 편정가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그를 맞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손님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하며 서점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배고서는 정문에서 마지막 손님을 배웅했고, 소열람은 서가에 남아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 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고실 문을 다시 연 누군가가 쓰러진 왕낭송을 발견했다. 오른손은 작업대 위 가격표 뭉치 쪽으로 뻗어 있었고, 맨 위 가격표에는 검정 마커로 쓰다 만 글자 한 자가 남아 있었다. 위쪽 획은 진했지만 아래로 갈수록 흐려지며 끊겼다.
그날 밤 이 서점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왕낭송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건에서 하는 일
- 현장을 훑어 단서를 직접 찾습니다. 자동으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 인물들의 진술을 나란히 놓고 서로 어긋나는 지점을 찾습니다.
- 확인한 것과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것을 수첩에 나눠 적습니다.
-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 나가 범인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 지목 후 사건의 전말과, 각 단서가 무엇을 가리켰는지 대조해 봅니다.
누구에게 맞나
사람을 모으거나 진행자를 정하지 않고 혼자 추리하고 싶은 사람, 운이나 반사신경이 아니라 논리만으로 답이 정해지는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습니다. 정답은 하나이고, 도달 가능한 단서만으로 그 하나에 이르도록 설계·검증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