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
그 밤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복지관에 납품할 의약품 점자 설명서 대량 계약, 은현점자도서관이 문을 연 뒤로 처음 맡아보는 규모였다. 새벽 첫 차에 물량을 실어 보내려면 하룻밤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관장 남장서는 저녁 무렵부터 작업실 불을 끄지 않았다.
그는 점역사로 시작한 사람이었다. 스무 해 넘게 남의 글을 손끝으로 옮겨 왔고, 그 일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몸으로 알았다. 소설이나 수필이라면 한 글자쯤 틀려도 나중에 웃으며 고칠 수 있다. 복용법은 다르다. 한 줄이 어긋나면 그 책을 읽는 사람이 약을 잘못 먹는다. 복용법 원고를 옮기는 날이면 그는 유난히 말수가 줄었다. 관장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만은 바뀌지 않았다.
은현점자도서관은 작은 곳이다. 직원 몇 명과 자원봉사자 몇 명이 후원금으로 살림을 겨우 꾸려 왔다. 이번 계약이 잘 끝나면 점역실 장비를 바꾸고 사람도 더 뽑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밤은 아무도 먼저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게시판에는 오늘 밤 전원 근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점역실에서는 원고가 계속 넘어왔고, 인쇄·제본실에는 마감 물량이 쌓여 갔다. 휴게실 쪽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후원 담당은 원장실 문서고에서 후원자 명단을 정리했고, 낭독 봉사자와 신입 교육생도 각자 자기 몫을 붙들고 있었다. 신간 점역본을 받으러 온 이용자 한 사람은 복도에서 관장을 기다렸다.
남장서는 마지막 전수 검수를 손수 하겠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사람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 단계만은 남에게 넘긴 적이 없었다. 젊은 점역사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마지막에 한 사람이 전부를 같은 기준으로 훑어야 빠진 곳이 드러난다고 그는 오래 믿어 왔다. 점역실 사람들도 그 습관을 알아서, 마지막 묶음은 늘 관장 책상에 따로 쌓아 두었다.
검수 자체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날도 그는 첫 장부터 순서대로 짚어 나갔다. 문서를 한 장씩 책상에 올려놓고, 손끝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로 천천히 밀어 나간다. 종이 위 점을 읽는 속도는 눈으로 활자를 훑는 속도보다 한참 느리다. 그는 그 느린 속도를 한 번도 아까워한 적이 없었다. 새벽까지 시간을 넉넉히 잡아 둔 이유도 그것이었다.
몇 시간째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중, 손끝이 한 군데에서 멈췄다. 셀 하나의 점 배치가 원본과 달랐다. 처음에는 자기 손이 피곤한 탓인가 싶어 같은 자리를 두어 번 더 짚어 보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우연한 오탈자로 보기에는 어긋난 자리가 너무 반듯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사람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일로 누군가를 몰아세우는 걸 평생 꺼려 온 사람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 하나를 조용히 작업실로 불렀다. 오해라면 오해라고 듣고, 아니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작업실에는 낡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 빛이 닿는 곳은 책상 위뿐이었고 서가 쪽은 어두웠다. 책상 한편에는 그가 평소 연습용으로 쓰던 슬레이트와 점필이 있었다. 반대편 곁상의 공용 브레일러는 덮개를 덮은 채였고, 덮개 위에는 낮에 뽑아 둔 출력물 몇 장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복도 너머로 야근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기다리던 사람은 곧 도착했다. 관장이 누구를 불렀는지 그 자리에서 본 사람은 없었고, 그 뒤 작업실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들은 사람도 없다. 남장서는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손으로 점자를 찍었다. 평생 남의 글을 옮겨 온 손이었고, 그 밤에도 그 손은 정확했다.
그의 손에는 연습용 슬레이트가 쥐어져 있었고, 슬레이트에는 점자가 찍힌 종이가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그 종이의 뒷면은 아직 누구의 눈에도 닿지 않았다. 그날 밤, 은현점자도서관에서 남장서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건에서 하는 일
- 현장을 훑어 단서를 직접 찾습니다. 자동으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 인물들의 진술을 나란히 놓고 서로 어긋나는 지점을 찾습니다.
- 확인한 것과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것을 수첩에 나눠 적습니다.
-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 나가 범인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 지목 후 사건의 전말과, 각 단서가 무엇을 가리켰는지 대조해 봅니다.
누구에게 맞나
사람을 모으거나 진행자를 정하지 않고 혼자 추리하고 싶은 사람, 운이나 반사신경이 아니라 논리만으로 답이 정해지는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습니다. 정답은 하나이고, 도달 가능한 단서만으로 그 하나에 이르도록 설계·검증되어 있습니다.
